먼저 사망 진단서부터. 이 펀드는 나쁜 논지 때문에 죽지 않았다. 레버리지 때문에 죽었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던 펀드가 6거래일 만에 자신의 모든 공개 포지션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장이 열리기도 전에 통째로 팔려나갔다. 화려한 붕괴에는 대개 악당이 필요하지만, 이 사건에 필요한 건 악당이 아니라 금융에서 가장 오래된 숫자 하나다. 그 숫자를 이해하려면,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간순으로 되짚어야 한다.
죽은 자는 누구였나
레오폴드 아셴브레너. 24세, 독일 출신, 전 OpenAI 연구원. 그는 2024년 ‘Situational Awareness’라는 AI 선언문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해진 인물이다. AGI가 곧 온다는 그 메모는 이 시대의 대표적 투자 논거가 됐고, 그는 같은 이름의 헤지펀드를 2024년 7월에 세웠다. 깃허브 전 CEO 냇 프리드먼, 스트라이프의 콜리슨 형제 같은 거물이 뒤를 받쳤다. 동시에 비판도 따라다녔다. 정식 자금운용 경력이 없다는 점, 과거 FTX와의 인연이 도마에 올랐다.
성과만 놓고 보면 비판은 무의미해 보였다. 약 2억 2,500만 달러로 시작한 펀드는 창업 이래 1,000%가 넘는 누적 수익률을 냈고, 2026년 상반기에만 순 439% 상승했다. 운용 자산은 한때 약 450억 달러까지 불었다(초기엔 200억 달러로 보도되는 등 수치는 보도마다 편차가 있다). 약 12명의 팀이, 수십 년 걸려 쌓는 규모의 자본을 2년 만에 굴리고 있었다. 그 대부분은 AI 데이터센터 붐과 엮인 종목에 집중돼 있었다.
6일의 붕괴
7월 중순 — 정점.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한 상반기 투자자 서한에서 펀드는 순 439% 상승을 자랑했다. 포트폴리오는 AI 인프라·반도체 롱에 집중돼 있었다. 엔비디아 공급망과 데이터센터에 걸린 이름들 — Nebius, SanDisk, Micron, CoreWeave, SK하이닉스, IREN 등 — 그리고 반대편엔 어도비 같은 소프트웨어 종목 숏이 걸려 있었다. 공개 주식이 약 3분의 2, 나머지는 비공개 지분이었다.
7월 하순 — 균열. 7월의 AI 인프라 급락이 이 책(book)을 정면으로 때렸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6월 22일 고점 대비 28.6% 빠졌고, 모건스탠리 모멘텀 TMT 지수는 53.5% 무너졌다. 펀드의 핵심 롱은 한 달 새 40~50%씩 떨어졌다. 잔인한 건 반대편이었다. 숏으로 걸어둔 소프트웨어 종목은 반대로 급등했다. 롱에서도 숏에서도 동시에 얻어맞는 최악의 조합이 벌어졌다.
7월 29일 — 마진콜의 정점. 프라임브로커였던 골드만삭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마진콜을 걸었다. 약 4배로 레버리지된 포트폴리오 앞에서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현금을 구하거나, 전부 팔거나. 아셴브레너는 월가 여러 곳에 급히 전화를 돌렸다. 흥미롭게도 불과 6일 전, 그는 투자자들에게 7월의 급락을 “2025년 초 이후 가장 매력적인 기회”라 부르며 8월 1일까지 추가 출자를 요청한 상태였다. 그 자금은 오지 않았다.
7월 30일 목요일 새벽 — 청산. 장이 열리기 전, 펀드는 공개 주식 포트폴리오 전체를 — 롱과 숏을 한꺼번에 — 켄 그리핀의 시타델에 단일 블록딜로 넘겼다. 매각가는 시장가 대비 약 10% 할인. 블록 규모는 보도에 따라 100억~160억 달러 선. 이로써 약 450억 달러였던 펀드는 100억 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7월 한 달 손실은 67%로 집계됐다. 세계 최고 수익률의 펀드가, 모든 것의 강제 매도자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6거래일이었다.
[잠깐] 4배 레버리지의 수학
왜 이렇게 빨랐을까. 답은 산수다. 자기자본 1에 4배 레버리지를 쓰면 총 포지션은 4가 된다. 이때 포지션이 25%만 빠져도 손실은 자기자본 전액과 같아진다. 실제로는 그 지점에 닿기 한참 전에, 브로커가 정한 유지선에서 마진콜이 날아온다. 그리고 마진콜은 최악의 타이밍에 강제 매도를 부른다. 즉 가장 싼 가격에 팔도록 만든다. 상승장에서 레버리지는 수익을 몇 배로 키우지만, 하락장에서는 똑같은 배율로 파산을 앞당긴다. 논지가 옳든 그르든, 이 산수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
잔인한 반전: 그는 틀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가장 쓰라린 대목은 여기다. 시타델에 블록딜이 넘어간 바로 그날부터 며칠 사이, 강제 청산당한 그 종목들이 일제히 반등했다. CoreWeave는 7월 29일 저점 대비 41%, IREN은 36%, SanDisk는 27% 튀어 올랐다. 다시 말해 그의 종목 선택은 근본적으로 틀린 게 아니었다. 다만 이르고, 레버리지가 컸을 뿐이다. 그리고 시장은 ‘이르다 + 레버리지’를 ‘틀렸다’와 정확히 똑같이 처벌한다.
레버리지가 없었거나 적당한 수준이었다면, 그는 올해 최상위 1% 성과를 내며 웃고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강제 청산은 그를 옳은 자리에서 최악의 가격에 끌어내린 셈이다. 아셴브레너는 손실에 “전적인 책임”을 진다고 밝히며, 이를 “값비싼 상처지만 값진 교훈”이라 표현했다. 펀드에 남은 것은 약 50억 달러 규모의 Anthropic 지분을 중심으로 한 비공개 포트폴리오이며, 앞으로는 사모 형태로 운영된다.
개인 투자자를 위한 교훈
이 사건이 헤지펀드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여기서 얻을 교훈이 규모와 무관하게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첫째, 레버리지는 확신의 크기와 무관하다. 아무리 옳은 논지라도, 빌린 돈으로 키운 포지션은 잠깐의 역행에도 강제로 정리될 수 있다. 옳음이 실현되기 전에 게임에서 퇴장당하면, 옳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둘째, 집중은 상승과 하락을 모두 증폭한다. 한 테마에 몰빵한 책은 그 테마가 오를 때 최고 수익률을 내지만, 그 테마가 30% 빠지는 순간 똑같은 강도로 무너진다.
셋째, 강제 매도의 저주를 피하라. 최악의 손실은 틀린 판단이 아니라, 최악의 타이밍에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온다. 버틸 수 있는 사람만이 반등을 가져간다. 버티게 해주는 건 결국 레버리지를 쓰지 않은, 혹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만 쓴 포지션이다.
세계 최고의 AI 논거를 쓴 사람이, 금융에서 가장 오래된 숫자에 걸려 넘어졌다. 그 숫자의 이름은 레버리지다.
⚠️ 이 글은 공개 보도를 바탕으로 한 사건 해설이며, 특정 종목·전략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니다. 인용된 수치(운용자산, 매각 규모, 수익률 등)는 보도마다 편차가 있고 이후 수정될 수 있으므로, 정확한 내용은 원출처(FT, WSJ, CNBC, 블룸버그 등)에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주 묻는 질문
4배 레버리지의 수학은 어떻게 되나요?
자기자본 1에 4배 레버리지를 쓰면 총 포지션은 4가 됩니다. 이때 포지션이 25%만 빠져도 손실은 자기자본 전액과 같아지고, 브로커가 정한 유지선에서 그보다 먼저 마진콜이 날아옵니다.
그의 투자 판단 자체가 틀렸나요?
아닙니다. 블록딜이 넘어간 그날부터 며칠 사이 CoreWeave는 저점 대비 41%, IREN은 36%, SanDisk는 27% 반등했습니다. 옳음이 실현되기 전에 게임에서 나가야 했던 셈입니다.
개인 투자자가 가져갈 교훈은 무엇인가요?
레버리지는 확신의 크기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옳은 논지라도 빌린 돈으로 키운 포지션은 잠깐의 역행에도 강제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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